




대구골동품 조선시대 초기 분청사기 인화문 국화문 발
내저부부터 대형 국화와 중소국화가 인화문으로 3단으로 들어갔고
밖으로는 선문 도안이 들어갔습니다
굽은 계룡산처럼 비율이 좁게 나왔고 가는모래 받침으로 번조하였습니다
주로 고급 기물에서 주로 사용하는 받침입니다
성형 당시 구연부 끝으로 태토가 벌어지자 도공수리 한 흔적이 보이는데
청유 뭉침이 폭포처럼 안밖으로 흘러내리는 경치가 좋습니다
재원 구연부 18cm x 높이 7.3cm
유 튐 수리 없이 상태완벽한 기물입니다